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일기

나를 바라 봄과 사람

효 명 2023. 6. 26. 00:31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렵다면 마음속으로 이 생각을 하라. 나는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깨어나야 한다. 이 세상에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짜증을 낼 필요가 있는가? 나는 기껏 이부자리나 끌어안고 살기 위해 태어났는가? 이것이 내게 주어진 낙이란 말인가? 나는 분투하기 위해 태어났는가, 아니면 자기 위해 태어났는가?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5.1

 

 

근간 여러 책들을 읽었습니다. 대부분은 인문학 특히나 심리학에 관련된 서적이었습니다. 호기롭게 책을 뽑아들어도 완독 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리거나, 또는 끝내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딜 가서,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독서입니다'라고 말하기 민망스러울 정도였어요. 소년 만화 완결을 손에 꼽는 게 쉬울 정도였습니다. 스스로도 책을 읽고 싶은 게 맞을까, 의문을 느끼는 날이 많았는데 약을 먹고 책을 집중해서 읽는 것이 쉬워졌습니다. 또, 편의점 알바 시간대에서도 약을 복용하지 않았을 때에는 인스타 피드나 릴스, 유튜브를 무의미하게 시청하고 있는 날이 많았습니다. 기억에 남지 않지만, '할 게 없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변한 것은 약을 먹고 있는 나밖에 없음에도 편의점에서 책을 읽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 '나는 생각을 쉬고 싶어서 유튜브와 SNS를 보고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되어 나 자신을 조금 더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읽던 책 중 당연 ADHD와 관련된 서적들을 먼저 읽었습니다. 그중 반건호 선생님의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를 읽었어요. (국내외 학회에서 성인 ADHD 연구의 신뢰성을 인정받고, 국내를 대표하는 ADHD 전문가-작가소개 참고) 
성인 ADHD의 84%에서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정신 질환이 있고, 두 가지 이상은 61%, 세 가지 이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45%라고 합니다. ADHD의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고 연구가 진행되어 가는 과정 가운데서, 또 어쩌면 평생을 약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ADHD 장애를 가진 환자의 입장에서는,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 자신의 통제와 나 스스로의 이해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밖에 할 수 없기도 했고, 외부는 통제되지 않으니 나라도) 내가 나 자신을 격려하고 의욕이 생기게 하여, 나의 욕구와 관심에 집중하는 것이 삶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효능감을 통한 행복을 찾는 일임을 다시 한번 알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는 시계를 구매했습니다. 저는 시간인식능력이 떨어지고,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취를 시작한 대략 8년 간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시계를 산 적이 없다는 것 알았습니다. 휴대폰을 보면 되는데, 굳이 시계를 집에 두어야 하는 필요를 몰랐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그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누워서 일어나서 보이는 정면 방향에 하나, 욕실에 하나 총 두 개의 시계를 구매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 패턴과 수면 패턴이 없어 약을 아침에 일어나든 오후에 일어나든 일어날 때 먹는다는 '저만의' 규칙을 고수해 왔으나, 오전에 눈을 뜬다는 규칙을 정해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제가 먹고 있는 메틸페니데이트 계열의 콘서타는 작용시간이 12시간이라, 야간 알바를 할 때는 점점 깨어나는 듯한, 혹은 말을 거는 것과 같은 여러 가지 생각과 정보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과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니 마치 변신 소녀의 캐릭터가 풀린 전, 후와 같은 괴이한 상태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상태가 설명할 수 없는 허탈감과 불쾌를 주기도 해서, 이 일을 생활 패턴 고정을 위해서 정리를 해야겠다는 고민 중에 있습니다. 
 

어린 시절 내가 사랑했던 아무쨔응...

 

 

'변신 소녀'하니, 생각이 났는데, 저는 마치 ADHD 약을 먹지 않은 나는 초라하고 볼품없고 구제불능이지만, 약을 먹으면 무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수를 하는 나의 모습에 대한 강박이 생겼습니다. 누구나 하는 실수인데, '누구나가 나는 되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나를 용서하기 힘들었습니다. ADHD라는 병명 이전에 나는 자존감이 낮고, 나를 사랑하고 격려하기보다 나를 꾸짖고 못마땅하게 구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던 거죠.
놀라운 것은, 저희 엄마가 저를 지시하고 통제하며 저를 키우셨거든요. 여자 혼자 딸을 키우는 게 얼마나 불안하고 또 힘든 일이었겠어요. 다만 저는 그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성인이 되어 학생들을 가르칠 때 저 또한 지시, 명령적 어조를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군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지금부터 성숙하게 나를 격려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찾을 시간이 생겼고, 지지해 주는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게 참 다행인 것 같아요.

 

 

사람은 분명 하강할 때가 있거든요. 그러니 실수는 나를 촘촘하게 성장시키고 가장 중요한 실력인 ‘기초’를 단단하게 해주는 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 웃따

 

 

 

 

 

 

인간의 행복과 건강은 집안, 학력, 직업, 주거 환경, 연수입, 노후자금의 유무가 아니라 인간관계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단 한 명의 친구라도 좋으니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지가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 <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 홋타슈고 지음, 윤지나 옮김

 

 

번번이 약속을 어기다 이번에는 시간 맞춰 도착하기까지 했어요. 분명 준비하기 전까지 나오기 싫다는 생각은 똑같이 들었는데, 이전처럼 강렬하게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의욕까진 생기지 않더라고요. 롯데 백화점 내에서 밥 한 끼 하려고 하니, 식당도 물가가 비싸서 사 먹기 부담스러웠습니다. 지하 2층을 둘러보고선, 소시지에 음료만 사서 다붓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시간이 그렇게 즐겁더라고요.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관계라는 건 정말 이상적이면서도 만나기 힘든 것 같아요. 친해질 지도, 나랑 맞는다는 생각도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참 신기하고도 소중한 인연이에요.

 

 

 


비가 내리는 날에는 나가는 걸 너무 싫어하는데, 집에 가는 길이 그렇게 짜증스럽지는 않았어요. 사람은 공감 능력이 뛰어나서 상대가 발산하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 갖게 된다고 하는데, 같이 만난 사람의 아주 사랑스럽고 긍정 기운이 저를 기분 좋게 해 준 건 아닐까 하네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