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일기

마을 버스 기사와 민폐 승객의 관계성

효 명 2023. 6. 22. 04:45

집에 가는 길에 마을 버스를 탔습니다.

날도 더워서, 걷기도 싫겠다, 환승 찍고 편하고 가고 싶더라고요.

저희 동네 마을 버스는 배차 간격이 보통 10분 정도 되고, 많은 차량이 운행되는 편이 아니라서 유동 인구가 많은 정류장에는 길게 줄 서서 마을 버스를 타기도 합니다.

역과 인접한 곳에 위치한 정류장이라, 사람이 많았습니다. 정류장에 할머님들 두 분이 무와 배추를 가득 담은 시장 바구니를 끌고 오셨습니다.


 
아시죠? 이 바구니!



무랑 배추들이 바구니에 다 실리지도 않아 상단은 노끈으로 묶어둔 상태였습니다.
보면서도, '저걸 어떻게 싣지...' 싶었습니다.

그리고 버스가 왔죠.
짐이 짐이다보니 줄의 가장 마지막에 서셨어요.
바구니를 두 분이서 2인 1조가 되어 위에서는 당기고 밑에서는 올리는데, 될 리가 없죠.

결국 바구니가 와르르 무너지고, 바닥에는 무와 배추가 굴러 다니고 아주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마을 버스는 입구가 이렇게 좁아요.

그러니 두 분이 입구 위, 아래에 서서 짐을 당기니 내려가서 같이 올려줄 수가 없어, 아수라장이 된 무와 배추를 주우실 때야, 내려가서 같이 바구니를 올렸습니다.

버스 내도 협소해서 빽빽하게 서있는데, 시장 바구니에 여러 다른 비닐에 담긴 야채 짐들을 올리니 정말 정신없더라고요.

가만히 기다리시던 기사님이 (아마 가만히는 아닌 것 같고, 짐 싣는 와중에도 입 안에 잔뜩 화를 머금은 상태였긴 했어요) 할머님들이 다 타고 나서, 언성을 높이시며 화를 내시더라고요.

"짐이 그렇게 많으면 택시를 타야지, 왜 버스를 타냐고!!!!!"

그러자 할머니, 참지 않죠.

"돈이 없어서 못탔어요, 돈이!!!!"

버스는 진즉에 침묵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을 버스 특유의 흔들림으로 굴러다니는 무를 주섬주섬 주워, 할머님 발치에 가져다 두었죠. 생각보다 "그만하세요" 라고 말하는데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그러면 집에 가만히 있지 왜 쳐 기어나오냐고!!!"

"아저씨 말 다했어요?! "

"....."

"됐어요, 그만하세요!!"

일촉즉발의 순간에, 결국 할머님께서 말을 먼저 끊으셨어요.
물론 그 뒤로도 마을 버스 기사님은 백미러로 할머님을 상당히 노려보셨지만, 평화가 찾아온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버스는 굉장히 빠르게 달려갔고요(정말 쾌속), 할머님들로 인해 늦어져 배차 간격을 맞추시기 위해 그런 듯 보였어요.

제가 그 버스 내에서 제일 먼저 내리게 되어 그 뒤에 누가 짐을 도와서 내려주셨을란가, 2차 전이 또 발발하진 않았을란가 궁금하더라고요. (오지랖 넓은 편)

언행과 태도를 꼬집기 보담도, 누구의 잘잘못이 더 크게 느껴지세요, (이 글을 우연히 읽게 된) 여러분들은?



할머님이 택시비가 없어서 못탔다고 하셨잖아요. 그게 또 마냥 작은 일은 아니예요.
 
 

 
 
 
우리나라 노인 세대의 특징은 빈곤, 질병, 외로움, 자살이다. 노인 빈곤율이 63.3%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세계 최악의 노인 빈곤국군에 속해 있다. - <노인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전병태, 류동순


 
 
 
부산은 광역시 중에서도 기초생활 수급자 비율이 높아요.
거기다, 인상된 택시비는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것은 당연해서, 할머님이 돈이 없어서 마을 버스 탔다는 말이 와닿더라고요. (저도 카카오 택시 삭제해버린)

특히나, 나이드신 분들은 몸이 좋지 않아 장을 자주 보기가 힘들잖아요.
한 번 나올 때, 바구니 가득 채워 장을 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물론 항상 감당하기 힘들만큼 장을 보심)
비단 저에게 일어난 하루의 해프닝은 아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반대로 버스 기사님들은 배차 간격이 역량 평가를 항목이다 보니, 배차 간격을 맞출 수 밖에 없는 입장이예요.

어떻게 보면, 각자의 생계가 달린 문제인거예요!


가장 최근에 접한 목포 시내버스 파업 기사입니다. 사장님이 이젠 목포시에서 재정 지원을 해줘도 운행 안할거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어요.

연료비와 인건비가 오른 상황에서, 인구는 감소하고, 이용객이 주니 재정 지원금은 줄어 적자가 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https://youtu.be/qQ2MxiaKUCg

 
 
이 해프닝을 확대 해석하면, 부산도 인구 감소로 인해 주 이용객은 노인 인구인데, 노인 인구를 배려해서 운행하니 배차 간격 변동의 문제가 생긴거예요.

어떻게 하면, 서로가 조금 더 배려하며 이용하고 지낼 수 있을까요?

모두가 나서서 도와줬다면, 이렇게 서로 언성 높일 일이 없었을테고, 여러모로 평화로운 날 중의 하루였을 거예요.

아무튼, 많은 깨달음을 얻은 하루가 되었어요. 사람들이 많아도, 타인에 무심하니 나서서 도와주려는 분위기가 잘 형성되진 않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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