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3. 11:51ㆍ생각의 습관
봄이 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봄이 왔습니다. 벚꽃이 피고, 바람이 부드러워지고, 길 위의 햇살이 따뜻해지면 사람들은 비로소 “아, 봄이구나” 하고 실감하게 되죠. 누군가에게는 커피를 아이스로 바꾸는 순간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옷장 속 겨울 외투를 정리하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 봄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도착합니다. 바로, 전기장판을 끄는 날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따뜻함을 놓지 못하게 된다
겨울 내내 하루 종일 켜두었던 장판을 언제쯤 꺼야 하나 망설이게 되는 그 시점이 오면, 저는 그제야 “이제 봄이구나”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게 됩니다. 계절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두꺼운 외투보다 먼저, 바닥에서 느끼는 거죠. 물론 저희 엄마는 6월까지도 장판을 켜는 분입니다. 따뜻함에 대한 집요한 애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저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그 시점을 엄마 쪽에 가까이 맞춰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예전엔 3월 초만 돼도 장판을 치워버렸는데, 요즘은 이상하게도 아직은 조금 이르지 않나 싶어 망설여지곤 하거든요. 아직도 켜두고 있어요. 어쩌면 따뜻함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 그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된 계절, 학습된 설렘
봄이 좋아지는 건 왜일까요. 날씨가 풀리면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 진다든지, 하잖아요. 꽃이 피고 나무에 잎이 나기 시작하면, 그 풍경만으로도 이상하게 마음이 환해지고, 나 자신도 조금은 다시 살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언어로는 다 담기지 않는 감각이지만, 분명 어디선가 생명이 다시 깨어나는 걸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나 자신이 다시 살아 있는 듯한 기분을 함께 불러오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꽃이 피는 것을 보며 왜 나까지 살아나는 느낌이 드는 걸까요? 3월이라는 숫자에 어릴 적부터 새 학기와 새로운 시작이라는 기분이 각인되어 있어서일 수도 있겠지요. 자연의 변화에 나 역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저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도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봄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왠지 웃음이 납니다. 이렇게 사소한 것에도 사람이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웃기기도 하고, 조금은 따뜻하기도 하죠. 실제로 봄이 되면 행복을 관장하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한다고 하니까, 몸이 먼저 반응하고 마음이 뒤따르는 계절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이런 감정들은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반복적으로 체득된 “봄 = 기쁨”이라는 경험이 무의식 속에 축적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아직 저의 장판은 켜져 있습니다. 언제쯤 끌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장판을 끄는 날, 저는 올해 봄을 진짜로 받아들이게 되겠지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의 봄은, 언제 오셨나요? 그리고 여러분은, 장판을 언제 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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