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사랑하는데, 자꾸 멀어지고 싶다

2025. 4. 4. 21:26생각의 습관

엄마의 연락이 피곤하고 죄책감을 낳는 이유

 

이미지가 이상해보이는 건 양해를...

 

보통 부모님의 연락을 받으면 긴장하는 자식은 없죠? 저는 매우 매우 긴장되며 짜증을 느낍니다. 그리고 짜증을 느끼는 동시에 짜증난 자신에 대한 죄책감도 같이 느끼는 편이고요. 

 

엄마를 사랑합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누가 “그래도 엄마잖아” 같은 말을 하지 않아도, 저는 압니다. 그 말이 왜 진부한지, 그럼에도 왜 진심인지를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와 대화할 때마다 제 안의 말이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 이유에는 엄마와 제가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해온 세월의 피로감에 있습니다. 그게 오래도록 쌓여 연락이 오는 순간 이미 피곤하고 방어적이게 돼요. 그래서, 이젠 숨이 막히는 것이죠. 기억이 먼저 반응을 해서, 엄마는 저의 정서적 자극 그 자체가 되어버려서 이전에 쌓였던 감정들이 휴대폰에 엄마라는 단어가 뜨자마자 고스란히 떠오르게 됩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대화의 첫말은 사랑이지만, 그다음은 피로

 

그래서, 말을 꺼내기 전에 이미 수십 번 다듬고, 지우고, 접게 되었습니다. 최대한 갈등을 회피하고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말을 끊거나 딴 소리를 하며 거리를 두는 대화를 하게 되었어요.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엄마를 자꾸 피해가고 싶어지는 저 자신을 저는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감정을 말하지 않는 엄마

 

그렇다면 저희 엄마는 어떤 언어를 쓰는 사람인가, 엄마는 전형적인 50대입니다.

감정을 정리하거나 표현하기보다는, 속으로 꾹꾹 눌러 삼키고 살아온 사람이죠.

그래서 엄마의 말은 소통이 목적이 아닙니다.

감정을 딸을 통해 배출하고, 상황을 공유하면서 위안을 얻으려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말은 소통이 목적이 아닙니다.

감정을 딸을 통해 배출하고, 상황을 공유하면서 위안을 얻으려는 것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말할 때 그 말은 이렇게 표현됩니다:

 

요새는 왜 이렇게 아이스크림 비싸졌대?

 

  • “요새는 왜 이렇게 아이스크림이 비싸졌대?” (직접 말하지 않고 힌트만 던지기)
  • “누구는 집에서 편하게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상대가 먼저 제안하길 기다림)
  • “엄만 물 마실게~ 아이스크림 같은 건 몸 차니까 안 먹어도 돼~” (은근한 유도)
  • “나도 예전엔 딸이랑 아이스크림 사 먹고 그랬는데…” (자조적인 뉘앙스)

 

이 모든 말들은 결국 같은 뜻이지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감정을 받아쓰기 하듯이 해석해야만 대화가 된답니다.

그래서 엄마의 대화 방식을 읽기가 어려울 때가 많아요.

말투가 투박하거나 어휘가 헷갈려서가 아니라 감정을 숨기고 말 안에 감정이 너무 많이 섞여있다 보니 해석해야 하니까 피곤해요.

그래서 저 말의 진짜 뜻은 뭘까에 대해 추론해야 하거든요. 

 

엄마의 감정을 해석하며, 감정을 맞춘다

엄마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대신 감정으로 움직이게 만들고, 결국 감정을 이용해서 관계의 주도권을 쥐려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죄책감, 걱정, 미안함을 유발해서 제가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거든요. 

그래서  듣는 사람은 늘 감정을 ‘해석하고’, ‘맞추고’, ‘책임지는’ 위치에 있게 돼요. 그래서 늘 피곤하고, 무기력하고, 부담이 생겨요. 

 

그렇다면 이건 가스라이팅일까

나는 엄마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걸까 스스로 질문해 본 적이 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마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가 죄책감을 느끼고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엄마의 말에 맞추고 미리 배려하고 조절하게 되고 제 감정을 미뤄두게 됩니다. 그러니까 구조는 가스라이팅처럼 작동하는거죠. 그게 문제입니다.

 

가벼운 대화가 무거워지는 순간

가족임에도 서로 다른 엄마와 나

 

또,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다보니, 대화의 결이 맞지 않을 때가 많아요.

즉 나랑 다른 언어로 대화하고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거죠. 최근 저와 엄마의 대화를 공유해 드릴게요. 

 

예를 들어 제가 이렇게 말하면

"요즘, 챗 gpt로 사진을 넣어 지브리 이미지로 바꾸는게 유행이래~" (농담과 흥미를 공유)

 

 

엄마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심심한가보네"
"친구를 사귀어"
"혼자 놀지 마"

 

라는 반응으로 돌아옵니다.

 

보통 항상 이렇게 대화의 결이 안 맞아서, 대화가 툭 끊겨버릴 때가 많아요.

아마, 저희 엄마는 제가 심심하고 외로워서, 챗gpt를 사용했다고 생각하셨고, 걱정하는 마음에 조언을 하신 거죠.

가볍게 흥미를 공유하고 싶었던 말이 갑자기 제 감정 상태에 대한 염려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저는 ‘친구 있다’는 걸 해명해야 하고, 결국 감정을 설득하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혼자 놀지 말고 친구를 사귀어라는 말은 결국 정보 전달이라기보다 외로우면 엄마의 마음이 불안하니 저의 행동을 바꾸려고 감정적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죠.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딸의 자리

 

그리고 이런 감정의 처리 방식을 왜 나에게 맡기고 나한테 왜 풀까 하는 억울한 마음이 들죠.

저는 항상 엄마의 감정을 책임지며 살아왔어요.

내가 나로서 대화한 것이 아니라 엄마의 감정을 예비 해석한 뒤에 말해야 했어요.

 

예전에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가족에게 ADHD 이야기는 했나요?”
“아니요.”
“왜 말하지 않았나요?”
“엄마가 슬퍼할까 봐요.”
“왜 엄마 감정을 당신이 책임지나요?”

 

그 말은 저에게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엄마 입장에서는 세상에 마음껏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유일하게 감정 없이 내던질 수 있는 존재가 자식이라는 것이죠.

엄마의 세대는 참는 것이 익숙한 세대이다 보니까요.

그래서,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지 못해서, 딸의 반응을 통해서 감정을 정리하고 싶고, 감정을 확인받으려고 합니다.

근데 이건 무의식적으로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 것이라, 엄마에게 화를 내도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엄마는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말이 누군가에게 고통이 된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너무 사랑하니까

 

누구나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엄마와의 거리가 점점 벌어질까 두렵게 만듭니다.

엄마에게 감정을 말하라고 해도, 말하지 못하니 최근에 엄마의 감정을 읽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 엄마를 지금껏 사랑해 왔으니 감정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요. 

물론 이것 또한 저에게 굉장히 피로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이 안에 분명한 사랑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겠죠.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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