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4. 17:22ㆍ덕질의 기록/애니
▪️『보이는 여고생』은 바로 그런 애니메이션입니다. 귀엽고, 무섭고, 귀여워서 더 무섭고, 그래서 더 귀여운… 감정의 셀프 콜드 체인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이런 장르를 보면 “공포물이네” 하며 심장을 조이게 되는데, 이 작품은 이상하게도 심장보다 애간장을 조이게 만듭니다. 그것도 “지켜주고 싶다”는 감정으로요. 지극히 가볍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귀신은 보이고, 주인공은 못 본 척하고 우리는 그걸 다 봅니다
『보이는 여고생』(일본어 원제: 見える子ちゃん)은 이즈미 토모키 작가의 만화로 시작하여, 2021년에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된 호러 코미디 장르의 작품입니다. 주인공 미코는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이후부터 줄곧 “보지만 못 본 척하기”라는 극한의 생존 스킬을 구사하게 됩니다. 공포는 실제로 존재하지만, 미코는 그것과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는 대신, 오직 ‘무시’함으로써 살아남고자 합니다.
애니메이션은 원작 만화의 대략 1~3권 분량을 담고 있으며, 현재 원작은 11권 이상 출간되어 꾸준히 연재 중입니다. 즉, 입문하고 나면 이후에도 충분히 이어서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보이는 여고생, 당신 뭘 상상하셨나요?
보이는 여고생이라니, 혹시 음흉한 상상을 하셨나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성적 상상을 유도하는 애니메이션인가,라는 의심이 들었고요. 반은 정답입니다. 제목은 아무래도 중의적인 표현을 갖고 의도적으로 지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작품 속 연출은 성적 상상을 유도하는 구도를 포함하고 있으며, 꼭 그런 장면에서 괴이한 존재가 등장하곤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귀신이 보인다는 의미를 가지지만, 동시에 보이기 싫은 것—예컨대 감정의 흔들림, 당황스러움, 혹은 성적인 상상까지도—모두가 '보인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여고생’이라는 말은, 귀신이 ‘보이는’ 미코이자, 시청자의 시선 속에서 ‘보이는’ 미코를 동시에 가리킵니다. 이 작품은 시선의 구도 자체를 하나의 테마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포와 귀여움이 공존할 수 있는 단어였던가 : 모에 요소의 적극적 활용
이 작품은 정말 신기하게도, “무서워하는 여고생”이라는 설정을 너무 귀엽게 그려내는 연출 기술을 보여줍니다. 모에 캐릭터인 주인공 미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애정을 느끼게 만듭니다. 공포에 떠는 그녀의 모습을 완전히 '감상 가능한 대상'으로 연출합니다. 시청자들은 “무섭겠다”보다는 “지켜주고 싶다”는 감정을 먼저 느끼게 됩니다. 이 구조는 불편함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애니메이션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흔히 말하는 '모에'가 무엇인지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면, 모에(萌え, もえ)는 ‘싹이 트다’는 뜻에서 유래되었지만, 덕후 세계에서는 강한 애정·연심·애틋함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귀엽고 예쁘기만 해서는 모에가 아닙니다. '지켜주고 싶은 감정'이 일어나야 비로소 모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에는 일본 사회의 이상화된 여성상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모에 캐릭터는 대체로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이고,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특성을 가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에 캐릭터는 남성향 애니메이션에서 반드시 등장하며, 모에 코드를 활용한 팬서비스성 연출도 자주 등장합니다.
미코는 분명히 공포에 질려 있고, 눈빛은 울음을 삼킨 채 떨리고 있으며, 몸은 얼어붙어 있지만—애니메이션은 그 장면조차 너무 사랑스럽게 포장합니다. 미코는 엄청나게 무서워하고 있지만, 그 장면을 보며 시청자는 '귀엽다', '애잔하다', 심지어는 '야하다'는 감정을 느끼도록 유도됩니다. 이런 모에 요소를 두고 '미코 귀엽다'라고 느끼는 분들도 많겠지만, 저는 그 점이 약간 미묘. 이런 미묘한 감정까지 연출한 걸까요. 아무리 봐도 그냥 팬서비스 장면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
일단 저는 추천합니다.
사실 이 작품은 귀여운 여고생이 귀신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로 단순하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이상할 정도로 진심이고, 이상할 정도로 애정이 가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캐릭터들도 상당히 귀엽고요. 그리고 저는 인외,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소재를 완전 좋아하기 때문에, 소재의 특이성 때문에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공포가 귀여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보이는 여고생』입니다. 한 번 감상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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